미리 가본 역사 전망대 ‘서울로7017’


글. 사진 권기봉(작가, 여행가) warmwalk@gmail.com

해외여행을 가면 으레 지도 한 장 얻어 도심 골목을 걷곤 한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삶이 보이고 문화가 보이며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도심 보행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는 구미 선진국이나 일본 등지를 여행 중이라면 걷는 맛은 배가 된다.

 

한국의 경우엔 사정이 좀 다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 고샅길 등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지만 그 길들은 어디까지나 이미 있던 자연의 길을 모태로 했거나 하다 못해 교외의 길들을 이은 것이다. 도심 골목을 비롯한 도시 안의 길들은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해왔다.

하루에도 근 10킬로미터를 걸으며 서울에 대해 쓰고 찍고 말하고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바로 그렇기에, 최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변화들이 자못 흥미롭기까지 하다.

지난 2014년 초부터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학교 정문 사이의 약 500미터 도로가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서울광장과 주변 인도를 잇는 횡단보도가 여럿 설치되면서 광장에 들어가기 위해 지하도를 통과해야 하는 불편과 옆으로 빙 돌아가야 하는 수고가 사라졌다. 보행자우선도로도 43개소로 늘어났으며 올해 안에 18곳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 한다. 그래선지 근래 들어 서울 도심을 걸으며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모임도 여럿 생겨나고 있다. 굳이 그 목적이 아니더라도 서울 걷기 여행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오는 5월 20일 개통 예정인 ‘서울로7017’은 더욱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서울로7017`은 낡아서 쓸모가 없어진 옛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810미터 길이의 보행자전용길로 재탄생시키는 사업인데, 단순히 보행자전용길을 조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길은 지난 1900년대초 일본이 경성역(현 문화역서울284)을 지으며 단절시킨, 마포나루에서 만리재를 지나 숭례문과 남대문시장 등으로 이어지던 옛 사람들의 주요 보행로와 물류축의 복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시에 높은 빌딩 숲에 둘러싸여 때로 왜소해 보이기도 하는 숭례문을 조망할 수 있는 더 없이 훌륭한 전망대 구실을 해줄 것이고, 한양도성 답사를 비롯해 천주교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역사공원과 한반도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 탐방 등 서울 도보 여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도 기능할 것이다.

 

1919년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해오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강우규 의거의 현장도 내려다 보인다. 당시 사이토를 폭사시키지는 못했지만 조선인의 의기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그 현장에는 현재 강 의사의 동상이 서있는데 ‘문화역서울284’ 앞, 즉 서울역 광장이 그곳이다.

서울역 광장은 민주화운동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도 하다. 신군부가 발령한 계엄령 아래 있던 지난 1980년 5월 15일, 10만여 명에 이르는 대학생과 일반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계엄령 해제와 민주화 추진을 주장한 곳이 바로 서울역 광장이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교내 시위를 시작한 학생들이 가두 진출을 해 15일 밤 8시경까지 농성을 이어간 것이다.

전국 35개 5만여명의 대학생들이 서울역 앞 도로에 모인 모습
http://archives.kdemo.or.kr/isad/view/00712862

다만 이 집회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학생 지도부 내에서 철야 농성을 주장하는 측과 군이 개입해 쿠데타의 빌미를 줄 수 있으니 이쯤에서 해산하자는 측이 논의 끝에 해산을 결정한 것이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이후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그도 그럴 것이 회군 이틀 뒤인 5월 17일 24시,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단행한 탓이다.

서울역 광장은 1987년 6월 26일 민주헌법 직선제 쟁취를 외치는 ‘국민평화대행진’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당시 대행진은 전국 34개 도시와 4개 군에서 함께 진행되었는데, 그토록 대규모의 시민 참여와 지속적인 시위가 이어지며 결국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1993년 12월에는 쌀 개방 반대 시위가, 1994년에는 ‘12.12 군사 반란자 기소를 위해 군사반란 재판 회부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이행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궐기대회’가 개최된 곳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요 공간이 서울역 광장이고,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그 현장을 가감 없이 내려다볼 수 있도록 열릴 공간이 서울로7017인 셈이다.

 

나아가 `서울로7017`은 과거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보행자들로 하여금 지금은 단절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연결될, 아니 연결해야 할 유라시아 철도로의 꿈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줄 것이다. 곧 19`70`년부터 20`17`년까지 존재해 서울로`7017`이라 이름 붙인 이 길은 단순히 1970년에서 2017년 사이의 과거를 기념하는 길이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며 동시에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지극히 미래지향적인 길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서울로7017`은 서울을 걷는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떤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해줄까. 또 어떤 신선한 생각이 움트게 해줄까. 길이라는 것은 만드는 이의 의지에 따라 탄생할 수 있지만 결국 그 길이 유의미한 길로 자리잡는 것은 보행자들에게 달려 있다. `서울로7017`을 걸어보자. 그 새로운 길을 걸으며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비롯한 현대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자. 그리고 그동안 불가능했던 꿈을 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