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업고등학교 4.19학생혁명 기념비


아침 일찍 일어나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안에서 청주로 길을 나섰습니다. 약 1시간을 이동하여 청주공업고등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행선지인 청주공업고등학교에는 1960년 4월 19일 당시 학생들을 주축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4.19학생혁명 기념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청주는 마산, 부산과 함께 학생 혁명운동의 발원지로, 뒤이어 전국적으로 운동이 확산된 것입니다.



기념탑의 하단에는 4.19혁명과 이를 기념하기 위해 탑을 만들었다는 설명과 충북에서 4.19혁명을 주도하였던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자교 학생 7명과 청주대학, 청주상고, 청주농고, 청주고, 충주고, 제천농고 학생까지 총 25명의 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탑과 동상을 통해 그 때를 상상해 보고 혁명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념탑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걸음을 떼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중한 기억을 안고 뿌듯한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학생과 시민들이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4월의 민주화 운동은 이들이 자유, 민주, 정의를 지키기 위한 발 벗고 나섰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의 우리가 민주화된 세상에서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58년 전의 학생 분들의 열정이 일구어낸 결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심으로는 오송역 근처에서 돈가스와 메밀국수를 먹고, 기분 좋게 광주로 향하는 ktx에 올랐습니다.



전남대학교 5.18기념관

 


민주화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지역인 광주로 이동하여 민주화운동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중 하나인 전남대를 먼저 탐방을 하였습니다. 1980년 5월 18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그날 전남대 학생들, 그리고 광주의 학생들이 무엇을 했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에는 무엇이 일어났을까. 정부의 비상계엄군이 광주의 각 대학을 장악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하였는데, 이에 울분한 학생들과 비상계엄군들간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한 학생들이 속출하자, 학생들은 '계엄 철폐', '휴교령 철폐'를 외치며 광주의 중심대로인 금남로로 진출하며 민주화운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날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였던 전남대였습니다.


과거의 피와 눈물, 그리고 함성과 외침이 담긴 그곳, 현장의 역사와 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우리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함성을 지르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을까‘ 라는 고민도 해보았습니다. 학교 전경을 둘러보니 과거엔 울분과 분노의 현장이었던 전남대가, 지금은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 뛰어노는 장소,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장소가 되어있었습니다. 과거가 있기에 오늘이 있다는 말,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전남대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장소는 광주학생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둘러보고 그 분들을 참배할 수 있는 장소인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었습니다. 앞서 우리가 탐방하였던 전남대는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이 곳은 1920년과 1930년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의 민주화 운동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사를 배우며 자주 들었던 일제강점기 시절의 대한민국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말살하고 우리나라 국민을 일본인화시키려 했던 일본의 정책은 다시 떠올려봐도 ’울분과 분노‘ 그 자체였습니다.



입구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새겨진 비석이 있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남긴 말로 역사는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며, 그 민족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정체성을 가질 수 없으며,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비석에 새겨진 글귀 그대로 현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잊지 말고 기억하며, 미래를 만들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주학생독립기념탑을 볼 수 있는데, 탑에서 나오는 분위기와 엄숙함이 그 때 그 시절의 역사를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3.1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마음속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참배실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들어낸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앞장서셨던 분들을 추모하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늘에 계신 분들께 마음으로나마 전해드렸습니다.


홍익대학교, 나영주 열사 기념탑



천안과 광주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신촌 옆 홍대에서 한 분의 열사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3학년생이었던 나영주 열사는 1960년 4.19 혁명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고 투병하던 중 1963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홍익대학교에서는 나영주 열사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하고 탑을 제작했습니다.

 

조각가는 기념탑이 민주화의 대장정과 민족사의 고난과 투쟁까지 함께 다루는 통사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탑 1층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2층에는 나영주 열사와 다른 여러 열사들의 억울한 죽음과 그 죽음을 통한 우리들의 거듭남을, 3층은 민초의 고난과 성스러움을 표현했으며 투과기법으로 조각한 4층과 5층은 각각 소외 속에서도 꿋꿋한 오늘의 민중과 민주화의 정신이 이상적으로 펼쳐질 미래의 밝은 세상을 그린 것입니다.



경희에서 다시 경희로



나영주 열사를 만나 뵙고 다시 향한 경희대학교에서는 ‘청년’ 벽화가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1989년 겨울에 탄생한 거대한 벽화는 두 차례의 벽화 테러와 문리대 외벽공사 관련 철거 논란 등 어렵사리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는 경희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라는 한 시대를 거친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민주로드의 시작과 끝을 경희대학교에서 마치며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내가 있던 자리에서 다시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며 민주주의의 시작은 어느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밟고 서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온새미로팀은 각자의 위치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자는 각오를 다지며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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