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갑니다>

4박 5일의 뜨겁고 즐겁고 그리고 유익하고 고.고.고! 열정 탐방을 소개합니다.

 

 <지금 만나러갑니다> 팀은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대학생 현장탐방`을 진행하였습니다.

 서울 - 대전 - 광주 - 대구 - 부산

 

 1일차 서울

통일전망대 (파주)

이한열 기념관 (마포. 신촌)

남영동 대공분실 (용산. 남영)

 

 2일차 대전

4.19 진원지 기념비

대전고등학교 내 4.19 추모비 (비석비)

3.8 학생 시위 진행로

3.8 학생 의거 기념탑

 

 3일차 광주

5.18 국립 민주 묘지

전남대학교 & 전남대학교 5.18 기념관

 

 4일차 대구

2.28 민주 기념 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 공원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경상감영

대구 근현대사 역사관(역사 박물관)

2.28 기념 공원 & 2.28 기념탑

 

 5일차 부산

부산 민주 공원 & 늘펼쳐보임방 및 공원 내 민주주의 관련 장소 답사

 

" 민주주의에 대해 각자만의 정의를 내려보다."

 

 " 60-80년 대의 대학생들의 열망과 꿈 그리고 희망 :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느껴보다."

 

" 그 때 만난 그 사람(분), 그 분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

 

" 2013년을 사는 대학생 신분인 우리,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

 

위와 같은 질문을 품고 4박 5일간의 탐방을 떠났습니다.

 

팀장 : 윤 민 이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팀원 : 김 덕 룡 (순천향대학교 수학과) . 김 지 후 (명지대학교 사학과) . 이 누 리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지금 만나러갑니다>

4박 5일의 탐방, 후기를 적다.

 

윤 민 이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나에게 `민주주의`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나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난감함을 느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정의는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더 나아가 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래 보았다.

 

` 민주주의 `

사전적 정의로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는 민주주의의 사전적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국민이 갖고 있는 권력?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내가 민주주의의 권력을 행사한 경험은 20살부터 해오던 `선거` 뿐이었고, 내가 딱히 살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몇 달 전 한 가수의 `민주화`발언 논란과 같은 사태는 나로 하여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을 주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국민이 `민주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못 말하역 곤혹을 치렀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지 궁금해졌다. 그렇다. 나는 이러한 본직적이고 현실적인 궁금증을 안고 `민주로! 내일로! 4박 5일의 탐방을 떠나게 되었다.

 

 4박 5일의 탐방의 시작!

내게 첫 내일로이자 내가 역사문화학과 임을 마음 깊이 좋아할 수 있었던 계기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으로서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더 나아가 국민에게는 기본권이 있는데, 종류에는 행복추구권, 인간답게 살 권리, 자유권, 평등권, 청구권, 참정권, 사회권이 있다. 특히 우리는 수많은 자유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우리가 어떻게 `자유`를 얻을 수 있었는지, 현재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 하고 있었다. 비단 역사문화학과인 나도 3.15 부정선거, 4.19 혁명,5.18 민주화 운동 등 굵직한 사건만 기억할 뿐 자세한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 그 사건의 의의에 대해서는 알지 못 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당연한 것이고, 공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는 그렇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 조금 더 행복한 세상,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선배님들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게는 그랬다. 이번 민주로 탐방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민주주의!

 내게는 늘 함께 가야 할 친구인 민주주의!

 

" 민주주의 제도가 처음 시작된 영국부터 시작해서, 프랑스에서도, 미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최근에는 중국과 미얀마에서도 모두 민주주의를 피를 흘리면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피를 먹으며 민주주의가 자라왔다. " (출처 : http://valley.egloos.com/viewer/?url=http://ladenijoa.egloos.com/4167113)

 

 내게 이 말을 알고만 있었을 뿐, 가슴 속으로 와닿는 구절이 아니었다. 운동권 세대에 살지 않는 현재,대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시위대열에 나아가고, 정부를 향해 요구를 하는 등의 운동을 하기 보다는 나의 경력과 나의 미래만은 집중하는 데 무게가 실려있다. 그래서 일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는 말이 내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탐방을 통해 나는 조금이나마 이 구절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했다. 김주열 열사,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찌 개인의 행복을 원하지 않았겠는가. 집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 대학에 들어가고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발을 내딜 준비를 했던 나이 대의 그들, 그들은 모두 우리와 비슷한 나이대였다. 수 많은 열사들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사회의 방향성 더 나아가 국가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자신의 한 목숨을 내놓은 것이었다. 이 사실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다양한 기념관 및 전시관에 가서 보게 된 관련 영상들은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자국민에게 총대를 겨눈 군인과 경찰들,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향해 열정을 태웠던 선열들.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끼며 내가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민주주의! 더 이상 이제는 피를 내놓을만큼 민주주의가 침해받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늘 생각하고 늘 인식해야 할 문제, 민주주의! 나는 민주주의를 늘 함께 가야 할 친구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선열들이 만들어 놓은 살기 좋은 세상을 나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 수 있도록 시민으로서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김 덕 룡 (순천향대학교 수학과)

 

 탐방 장소에 대한 각각의 후기가 아닌 전반적인 후기를 작성하자면 아무래도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현장들이 기념비 정도만 세워져 있어서 현장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정도가 개인적으로는 약했던 것 같았다. 이는 그 현장에 가까이 거주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 장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왜 모르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민주로 내일로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많아져서 직접 역사를 글뿐만 아닌 눈으로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이다.

 

 김 지 후 (명지대학교 사학과)

(* 김지후 팀원은 탐방 각각의 후기를 적어주었다.)

 

(1) 통일전망대

 

 어릴 때 몇 번 가본 곳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막상 가보니 어릴 때 갔을 때와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북한이 정말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몸소 느끼게 되었다. 강 건너 정말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대적 관계로 지내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다. 통일이 되어야 된다는 막연한 주장은 나에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통일전망대를 와서 구경을 하고 나면 통일에 대한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되고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2) 이한열기념관

 

 이한열 열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기 전에 이한열 열사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가보니 이한열 열사의 선배님이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이한열 열사의 측근이 그 당시를 직접이야기 하여주시니 더욱 이해가 잘되고 내가 진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건위주로 공부를 많이 하다보니 정작 그 사건에 있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였는데 이 기회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어 정말 갚진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3) 남영동 대공분실

 

 이 장소는 민주로 내일로 코스를 짜면서 처음 알게 된 곳이다. 남영동이 서울역근처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보니 건물이 일반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골목길에 있었다.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고 또한 공휴일에는 문을 닫으니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적어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는 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고문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보니 정말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그 당시 박종철 외 여러 사람들이 이 장소에서 고문을 받으면서 힘들어 했을 상상을 하니 정말 화가 났다. 남영동 대공분실가는 표지판을 큰 도로에 만들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4) 4.19 진원지 기념비

 

 4.19진원지 기념비라고 해서 제법 크고 잘 갖춰져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지하철역 입구역 뒤에 조그만하게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또 그 옆에 쓰레기들이 뒤덮혀 있어서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기념비인지도 모를 것 같았다.  바로 앞이 횡단보도이고 뒤에는 지하철역 입구라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만 하지 기념비를 제대로 볼 장소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좀 더 넓고 쾌적한 곳에 세웠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5) 대전고등학교 내 4.19 추모비 및 3.8 학생 의거 기념비

 

  대전고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전고 안 운동장에추모비와 기념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학교 정문 앞 눈에 띄는 곳에 설치하였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6) 3.8학생시위 행진로

 

 교수님이 차로 드라이브해주셔서 편히 볼 수 있었다. 대전고등학교, 도청, 4.19진원지 등이 서로 가까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당시 직접 걸어서 행진을 하였다는 것을 상상하면 규모가 상상이 안 된다.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였다는 데 어느 정도였을지 내가 그 때로 가서 보고 싶을 따름이다. 대전의 학생들이나 사람들에게 직접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7) 3.8 학생의거 기념탑

 

 기념탑이 굉장히 크고 잘 갖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공원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쳐다볼 뿐 기념탑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안타까웠다. 나 또한 우리지역에서 있던 기념탑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다시 한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 5.18 민주 국립묘지

 

 광주 하면 5.18민주화운동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곳을 직접가보게 된다니 굉장히 설레었다. 국립묘지를 가보니 굉장히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광주시내가 많이 발전하지 못하였어도 5.18 민주 국립묘지만큼은 정말 잘되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영상도 보고 그 당시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묘지를 보면서 과연 사람들을 꼭 죽였어야 했는지 전두환 정권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하필 타깃이 광주가 되어서 죄 없는 시민들이 죽어야 했던 야속한 운명이 안타까울 뿐이다. 광주는 정말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와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9) 전남대학교 & 전남대학교 5.18 기념관 및 박승희 꽃밭 & 5.18 기념 벽화 & 윤상원 열사 기념비 & 전남대학교 내 5.18 민주화 항쟁 발원 기념비

 

 전남대학교가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전남대 학생이 안내를 안 해줬으면 어디가 어딘지 몰라 아까 계속 헤맸을 것 같다. 전남대 학생도 모르는 역사적 장소가 많았다. 가장 기억이 남았던 장소는 5.18기념 벽화였다. 그 큰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도 궁금하였다. 또 내가 만약 전남대 학생이라면 기념벽화가 왜 그려졌는지 궁금해서 기념벽화에 대해 찾아봤을 것 같다. 전남대는 직접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장소가 많아서 전남대 학생이라면 정말 눈으로 역사를 보면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10) 2.28 기념 중앙 공원

 

 2.28 기념 중앙공원이라기 보다는 그냥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비를 공원 중앙보다 차라리 큰 도로가 주변에 눈에 띄게 두었으면 한명이라도 더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11) 국채보상기념공원 & 국채보상기념관

 

  시민들에게 접근성이 뛰어난 기념공원에 국채보상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어서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념관가서 영상도 보고 해설사님의 말을 들으니 잘못 안 것도 있고 몰랐던 부분도 굉장히 많았다. 해설사님이 정성스럽게 해설해주신 덕분에 국채보상운동을 제대로 알 수 있어서 값진 시간이었다.

 

 (12)경상감영공원

 

 공원 안에 조선시대 건물이 있으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같았다. 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공원을 둘러보니 이해가 잘 되었다. 해설사님의 역할이 큰 것 같았다. 다음번에 누군가 경상감영공원을 가게 된다면 혼자서 구경하는 것보단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경하는 것을 추천한다.

 

 (13) 대구근대역사관

 

 일제강점기 식산은행건물을 없애지 않고 역사적 장소로 남겨두어 대구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하였다. 대구근대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특히 버스 안내양이 설명해주는 영상이 나오는 곳은 어린이들도 지루하지 않고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디어가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14) 두류공원 내 2.28 학생 의거 기념탑

 

 2.28학생 의거 기념탑은 규모만 클 뿐 제대로 된 설명을 해놓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또한 기념비의 모양이 특이하였는데 왜 그런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설명을 해놓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 경북대학교 여정남 공원

  

 경북대학교도 전남대 못지 않게 굉장히 컸다. 경북대 학생들에게 물어봐서 여정남공원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 학교가 너무 크다 보니 알아야 되는 곳을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발생하는 것 같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여정남공원에 세워져 있는 탑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학생들에게도 물어보니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최소한 자신이 봤던 것에 대해서는 알고 모르면 알아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더해갔다. 

 

 

 (16) 부산 민주 공원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어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좀 올라와야 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한번 와보면 좋은 곳이다. 역사를 알 수 있어서도 좋지만 경치가 좋아 운동이나 산책하기 딱 인 것 같다. 해설사님의 정겨운 부산사투리로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가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상실에서 본 영상은 대전, 광주, 대구 등등의 역사적 사건을 총 집합해 보여준 영상이라서 총 복습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부산에 다시 온다면 해운대보다는 부산 민주공원이 더욱 나은 것 같다. 사람들에게 뜻 깊은 부산민주공원을 꼭 추천해주고 싶다.

 

 

 이 누 리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탐방 전엔 민주주의에 대한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께서 열심히 투쟁하여 얻어낸 정신이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왔던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절실함이 크게 와 닿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저는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왜’ 민주주의를 절실하게 원했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탐방 이전에는 제 이전 세대의 일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했었습니다. 제 이전 세대의 시대와 제 세대의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에는 분명 다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예요. 하지만 이제는 두 시대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투쟁하셨던 분들이 원했던,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통일전망대, 이한열 기념관과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분명 통일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통일전망대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임진강 너머로 보이는 휑한 북한의 모습과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정전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과연 민주주의가 완성된 후에 통일이 담론으로 떠오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할 때, 과연 우리 국민들은 통일을 원할 것인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확답을 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평화통일이라는 제 개인적인 의견은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한열 기념관은 이번 탐방 장소를 통틀어 가장 신선했던 곳입니다. 우리에겐 이한열‘열사’였던 분이 투쟁의 현장에 계셨던 분에게는 ‘한열이’라 불리는 것을 들으며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고, 단순히 과거의 투쟁과 피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지금은 어떠한 길로 이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등등 현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이한열 열사께서 대학시절 만화 동아리 소속이었다는 특징을 살려 만화공모전을 열고 관련 기획전시를 열고 이한열 열사와 관련된 상품을 제작하며 미래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그곳에 계셨던 분들은 과거 투쟁의 역사를 통해 현재 역사의 나아감을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서울에서의 가장 마지막 일정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장소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이 올랐을 계단을 올라가볼 수 있었고 공권력의 횡포 아래 신음했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축 설계에 대한 설명, 그 때 당시 고문현장에 대한 설명, 당시 정재계 인사들과 군에 대한 설명 등을 해주셨던 박종철 열사 기념 사업회 관계자 분께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경찰들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그 당시 공권력의 폭력이 어떠했는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설명을 들었을 당시의 느낌은 아직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둘째 날, 대전에서는 4.19 진원기념비를 보는 것으로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전지부의 전 회장님께 설명을 들으며 3.8학생운동, 4.19혁명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고 당시 시위로를 직접 보며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었어요. 4.19혁명 진원기념비가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 아무도 주의 깊게 보는 듯하지 않았던 느낌은 설명을 들을 당시 느꼈던 매우 안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대전고에 방문하고 전 회장이셨던 교수님의 배려로 당시 3.8학생 운동의 시위로를 쭉 둘러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지만 그 때 당시 시가지를 걸었을 사람들의 마음을 다른 시각에서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대전지부 회장님과 부회장님을 새롭게 만나 뵙고 그 분들에게 3.8학생의거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사업회에서 발행하는 책자와 부회장님께서 직접 쓰신 시집도 받아볼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더욱 성실하고 즐거운 탐방이 되라는 뜻에서 점심을 사주시기도 하셨어요. 점심을 함께 하며 이야기도 하고 즐겁게 마무리한 대전에서의 일정이었습니다.

 

 셋째 날, 광주에서는 5.18민주 국립묘지를 가는 것을 시작으로 민주탐방을 재개했습니다. 기념관을 먼저 관람하고 잔디밭 위에 만들어진 묘지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뭔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숭고한 뭔가가 느껴졌어요. 날씨가 매우 덥고 따가운 날이었지만 돌아오는 내내, 정말 와보길 잘 했다라고 생각했던 곳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전남대에 방문했습니다. 5.18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의 현장을 전남대 친구의 안내로 둘러볼 수 있었고 전남대 안에 마련되어 있는 기념관을 통해 5.18민주화 운동을 좀 더 새롭게 느낄 수 있었어요. 5.18민주화 운동의 의미와 관련된 현대적인 조형물들과 전달방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외에 벽화도 보고 이승희 꽃밭, 몇몇 열사들의 동상 등등 전남대를 산책하듯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고 생각도 깊고 오래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전남대 친구도 새삼 5.18에 대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다고 말해주었어요.

 

 넷째 날은 우리나라에서 덥다고 손꼽히는 대구에서의 탐방이었습니다. 2.28기념공원국채보상기념공원, 그리고 국채보상 기념관을 방문했었어요. 공원들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국채보상기념관이 매우 잘 되어 있었고 특히, 담당하시는 해설사분께서 본인이 담당하신 업에 대한 의식과 책임의식이 뚜렷하셔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질문을 드렸었는데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견을 깔끔하게 전달하시며 대화를 나누고자 하시는 모습에 ‘멋진 기성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해설사님 덕분에 이전세대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관점이 늘어났습니다.

 경상감영공원대구근대역사관은 한 곳에 모여 있어서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었는데 원주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감영의 모습과 그 역사에 대해 역사학도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알아야 할 것을 공부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구근대역사관은 대구라는 도시에 관해 매우 잘 정리를 해놓았던 박물관이었고 특히 근대의 대구를 버스로 관광하듯 전시해놓았던 영상물을 관람하는 시간은 박물관 측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재밌는 감상으로 기억합니다.

 2.28의거 기념탑여정남 공원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고 기념비나 기념탑들은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했던 어린 세대들에게는 당시의 정신을 느껴보기엔 매우 정적인 기념물이었으니까요. 경북대 안에 있었던 여정남 공원은 해당 학교 학생들이나 교직원 분들 중에 아는 분이 한 분도 없었고 공원 자체도 공원인지 그저 조형물을 설치해놓은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규모가 작았습니다. 어떠한 것을 기념하고자 기념물을 만든다면 그것을 겪은 세대가 아니라 겪지 않은 세대의 시각에서 기념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탐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산에서는 부산민주공원을 들렸습니다. 부산에서는 이곳 한 군데만을 갔을 뿐이었지만, 저는 부산민주공원을 이한열 기념관, 남영대공분실과 함께 느낌과 의미가 가장 풍부했던 탐방지로 기억합니다. 부산민주공원 위에 있는 부산민주박물관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곳에서 상영해주는 영상과 그 영상을 감상하는 시스템이 젊은 세대도 새롭다 느낄 만큼 신선해서 인상 깊었고 설명해주시는 분들의 친절함과 센스, 눈높이에 맞춘 설명에 놀랐습니다. 전국에서 최초라는 민주박물관에서 독방을 체험해보는 등 길지는 않았지만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 있었고 부산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분들과의 만남이 그곳에서의 기억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지금 만나러갑니다>

팀원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았습니다.

 

 윤 민 이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민주주의!

각 탐방지에서 만난 뵌 선생님들에게 `민주주의를 무엇이라 정의내리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 중에서 나는 이한열기념관 사무 국장님의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민주주의는 비단 정치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이한열 열사, 박종철 열사 등 다양한 선열들이 피와 목숨을 내놓고 지키고자 했던 것은 정치권력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것을! 나도 동의한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김 덕 룡 (순천향대학교 수학과)

 

  과연 그 누가 “민주주의는 이것이다.” 라고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번 탐방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단순히 정치적인 사상의 하나로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 지 후 (명지대학교 사학과)

 

  민주주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민주화 장소를 둘러보고 그 당시를 겪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바로 당시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절박하고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마 지금 희생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셨던 열사들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민주주의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누 리 (역사문화학과 역사문화학과)

 

   민주주의는 국민의 머릿속에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의식이 당연하게 인식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권력을 위한 정치, GDP 증가를 위한 경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한 정치, 국민의 안정을 위한 경제라는 인식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죠. 물론, 국민도 국가를 위해 노력하고 때론 희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과 희생은 ‘내 국가’라는 주인의식에서 나왔을 때 진짜인 것이기 때문에 우선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 완성의 첫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만나러갑니다>

팀원들이 `민주로! 내일로!에 대한 의견 및 개선사항, 요구사항을 말합니다.

 

 

윤 민 이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단 한번의 탐방으로 끝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신과 이념을 배우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민죽념사업회는 이러한 대학생탐방을 1회적인 행사로 끝내지 말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탐방을 다녀온 팀원들끼리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어서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먼저 다녀온 선배들(민주로! 내일로!)과 앞으로 지원할 많은 대학생들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글로 추천하는 코스가 아닌 직접 말로 해줄 추천하고 조언해줄 수 있는 자리도 만들면 좋을 것이다.

 

김 덕 룡 (순천향대학교 수학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한 책을 보았다. ‘한국근현대사 60년’ 이와 같은 책을 팀당 한권씩 지원을 해준다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사실상 이공계학생들의 대부분은 정말이지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이 약하기 때문에 흐름을 알 수 있는 책을 추천해주거나 지원해준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김 지 후 (명지대학교 사학과)

 

 `코스에 따른 일정에 따라 다르게 지원금은 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 23일에 10만원 34일에 15만원

 `물론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역사공부는 어느 정도 가고 가겠지만 그래도 민주로 내일로 에서 오리엔테이션 정도는 해서 기본적 역사적 지식을 알려주면 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 역사여행이 아닌 좀 더 긴 대외활동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누 리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우선 기념물에 대한 것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기념탑이나 기념비와 같은 것들은 젊은 세대에게 민주화 운동에 대한 특정 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소용이 없습니다. 만드시는 분들은 많은 의미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통해 탑과 비를 만드시겠지만 보는 청년들에게는 그저 돌을 깎아서 세워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각의 탑과 비가 지닌 의미, 그리고 그 조형물 속 설계들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좋겠지만 많은 기념탑과 기념비들이 공원 같은 곳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기만 한 경우가 더 많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예산에 대한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탐방을 통해 31만원의 경비를 지출했습니다. 숙식과 관련된 것은 각 개인이 해결한다손 치더라도 이 프로그램이 <민주로!내일로!>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것인 만큼 지원금은 내일로 티켓값을 포함한 각 탐방 지역에 가는 교통비 정도는 모두 지원해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외로 각 지역의 민주화 운동 현장이나 기념물들이 서로 근거리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시간맞춰 이동하는데 있어 때로는 택시를 타야 기차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만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