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톡톡 탐방 후기


탐방을 시작하며

‘여성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탐방을 위해 모인 네 명 모두의 입에서 나왔던 말입니다. 여성 의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청년들이었지만, 실제로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여성들이 서 있어왔던 자리에 함께 서 있고 싶다는 생각에 ‘여성의 역사와 삶’을 탐방의 주제로 잡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역사에서 여성의 역사는 지워진 역사였습니다. 피를 흘리며 싸운 동지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민주화의 역사에서는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고, 도리어 국가권력과 남성권력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폭력은 그들을 피해자이자 생존자로서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저희는 ‘여성의 이야기, 여남은 이야기’라는 뜻을 담은 ‘여담톡톡’을 팀명으로 정하고, ‘전쟁, 민주화, 노동’ 분야 여성의 역사를 찾아갔습니다.

저희가 탐방한 탐방지는 ‘전쟁과 여성’에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동두천 기지촌, 두레방, 상패동 무연고묘지, 소요산 성병관리소가 있었으며, ‘민주화와 여성’에서 국립 5·18 민주묘지, 망월동 묘역, 5·18 민주화운동기념기록관, 여성미래센터,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갔고, ‘노동과 여성’에서 구로공단여성노동자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탐방 시작!

<1일차>

-여성미래센터-

1일차의 첫 방문 장소는 ‘여성미래센터’였습니다. 여성미래센터는 한국여성단체연합 10주년을 맞아 기획이 제안되어 만들어진 장소로, 여성 평화의 집을 전신으로 하는 센터입니다.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환경연대, 인권정책연구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의 단체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저희는 여성미래센터 1층 카페 바오밥나무에서 음료를 마시며 특별 전시를 관람했는데요. 각 분야의 남성들에 의한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는 #미투운동에 대한 전시였습니다. 과거로의 탐방을 시작하기 전 현재의 여성 운동을 살펴볼 수 있어 뜻깊었고, 여성에게 폭력적인 모든 공간이 사라지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뤄진 세상을 꿈꿔보았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비 올 듯한 하늘을 바라보며 도착한 곳은 주한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1350회차 수요시위가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여담톡톡 팀원 대부분이 두 번째로 찾아온 수요시위였는데요, 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같은 요구사항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지만 중학교 학생들부터 금융사무노조까지 다양한 단체가 연대한다는 사실에 저희도 힘껏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길고 긴 시위가 끝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그 때까지 더 많은 지지가 모이고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소녀상 앞으로 나아오기를 바라봅니다!



-구로공단여성노동자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

1일차의 마지막 일정은 금천 순이의 집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70년대 경제개발로 인해서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그 가운데에 노동자들의 희생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아는 사람들 특히 여성 노동자의 현실에 함께 공감하는 이는 너무나도 적었습니다. 금천 순이의 집은 바로 그러한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와 삶을 담아낸 전시관이었습니다. 1층에서는 당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사진과 야간학교에서 공부하던 교재를 살펴볼 수 있었고, 지하 1층에서는 그들의 자유와 삶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쪽방(벌집)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소모되었던 수많은 인생들, 그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삶의 무게가 너무 크게 다가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단지 약자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을 뿐, 그 능력에 한계가 없는 강인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2일차>


-국립 5·18 민주묘지 & 망월동 묘역-

기대했던 광주의 일정은 저희에게 커다란 울림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우천상의 관계로 2일차 대부분의 시간을 국립 민주묘지와 망월동 묘역에서 보냈는데, 5·18민주화 운동 당시를 거쳐 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민주묘지에 도착해서는 안내원 분의 5·18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자리와 망월동이 그 날에 있어 가지는 의미, 그리고 5·18 중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묘비에 적힌 이름들, 묘비 뒤에 적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 눈앞에 다가오는 죽음과 진물과 고름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항쟁이 떠올라 마음을 다한 추모를 올렸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18의 순간들을 마주한 뒤 여담톡톡이 향한 곳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록관은 유네스코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5·18에 관련한 사료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는데요, 무려 4층짜리 기록관이라 광주의 5월이 남아있는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5월 여성활동’이라는 전시관에서는 이제까지 잊혀왔던 여성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재생산 영역이기에 여성의 역사로 늘상 조명되었던 ‘주먹밥부대’ 이외에도, 가두시위와 시체염, MBC 방송국에 대항한 항쟁 등 여성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성 조직화의 힘!’이라는 문구를 보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불씨를 되살리는 팀원들이었습니다! 저희가 갔던 주간에 일본군성노예제와 관련한 특별 전시 <진실과 정의, 그리고 기억>도 관람하며 여성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국가폭력과 성폭력의 진실에 대해 이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일차>

-두레방-

셋째 날의 일정은 의정부와 동두천을 탐방하며 미군 기지촌에 관련한 역사 그리고 현실을 찾아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방문지는 기지촌 성매매를 포함하여 성착취인신매매 근절과 군사주의 반대를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이자 상담소인 ‘두레방’이었습니다. 활동가 님들의 업무가 있어 인터뷰는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떻게 탐방을 하면 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자료집도 나누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군사기지가 철수한 후 의정부의 기지촌은 많이 쇠락했는데, 두레방 인근을 둘러보며 이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국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적혀있고, 클럽과 바라는 이름이 적힌 허물어진 가게들, 그리고 좁디 좁은 쪽방들이 기지촌이 분명히 존재했으며 그 가운데 피해자 분들의 삶이 어땠을지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기지촌의 입구에 자리한 두레방은 폭력 속에 살아가는 그들에게 사랑과 회복의 가치를 나누는 등대이지 않았을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패동 무연고 묘지 & 소요산 성병관리소-

택시를 타고 도착한 산중에서도 길을 찾을 수 없었던 상패동 무연고 묘역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이제 안장이 가능한 자리가 없어서 더 이상의 관리도 되지 않던 무연고 묘지는, 풀숲에 가로막혀 지나갈 수조차 없는 길의 끝에 있었습니다. 소요산 성병관리소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락 페스티벌이 벌어지고 있는 소요산 역의 안쪽에는 폐허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성착취 산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알려주는 무연고 묘지와 성병관리소를 바라보며,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못하고 잊혀진 채로 죽어간 여성들의 비통한 삶을 느꼈습니다. 특히나 기지촌 여성의 문제는 현재 다른 의제에 비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어둡고 억압받는 곳에 늘 귀 기울여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동두천 기지촌-

본래의 탐방 계획에는 없었지만, 두레방 활동가님의 추천을 받아 방문한 마지막 탐방지가 바로 아직 미군기지가 남아있는 동두천의 기지촌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성착취 산업이 공공연히 불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지촌이 남아있다는 것과, 한국인 여성이 동원되었던 그 산업이 이제는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의 여성들로 대체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국인 관광특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지촌은 여전히 성착취 산업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한숨과 두려움으로 거리를 걸어야만 했던 팀원들은 시간이 지나도 국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여성들의 삶을 바라보며, 상패동과 소요산에서 보았던 지워지지 않는 참혹함을 곱씹으며 동두천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4일차>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 정의연-

마지막 일정은 ‘전쟁과 여성’의 마지막 장소,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과 정의연 활동가님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수요시위에서 함께 외치고 광주의 특별전시에서도 둘러보았지만, 박물관에 와서 보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생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할머니들의 이야기부터, 일본군이 군‘위안부’를 직접 설치하고 관리했다는 기록, 그리고 그 폭력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로 세상을 깨고 나오신 할머니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이제까지의 기록을 보았습니다. 또한 정의기억연대의 활동가님과 함께한 인터뷰는 참 따뜻했습니다. 긴 세월 이 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헌신하신 것이 존경스러웠고, 얼마나 많은 분들의 땀과 눈물로 이 박물관이 지어지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여담톡톡의 마지막 탐방 장소는 본래 남영동 대공분실로 운영되었던 현 경찰청 인권센터였습니다. 경찰청 인권센터에서는 80년대 당시의 대공분실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으며, 박종철 열사의 기념관도 그 아래층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탐방단은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치밀하고 교묘하게 설계된 대공분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셨던 고문실을 보며 우리와 같은 나이의 대학생이 이러한 공포스러운 공간에서 고통 받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한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분노해 기습시위를 했던 여성들을 기억하며, 열사와 여성들이 남기고 간 민주주의를 이 땅 어디에서든지 꽃 피워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탐방을 마치며

    이번 청년 민주주의 탐방의 저희에게 너무나도 큰 배움과 연대의 기회였습니다. 평소에도 여성 문제에 대해서 함께 아파하고, 여성의 역사에 대해서 기억하려 애썼지만 직접 그 현장에 와서 느끼는 사람들의 삶은 ‘진실’ 그 자체였습니다. 전쟁은 여성들의 삶을 짓뭉개는 폭력으로 행해져왔다는 사실을,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의 가운데서 여성은 하나의 축이었음을 그들 또한 하나의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4일간 보고 들었던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평생 잊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지금도 어딘가에서 쓰여지고 있는 여성의 역사에 함께하며 그 역사의 한 줄기로 남는 여담톡톡의 모두가 되기를 마음에 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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