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야 대학가자`

1일차에 방문한 곳은 4.19민주묘지와 명동성당, 가천대학교, 서울대학교입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4.19민주묘지로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4분의 합동 분묘로서, 이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기념탑 중앙에는 의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탑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4.19혁명 기념관이 건립되어있는데, 유물전시실, 당시 배경, 역사적의의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역사책으로 배웠던 곳을 직접 찾아뵙고, 참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번 탐방을 하면서 과거의 아픔을 알아가며, 미래에 한 발짝 나아가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명동성당은 1970년대와 1980년대 군사 정권 시기를 지나며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있었고 민주화운동의 성지였습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도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타오르는 불길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서울 시내는 박종철 군고문 치사사건의 조작 은폐를 규탄하고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국민의 함성으로 뒤덮였고, 전두환 정권의 강경 진압에 맞선 학생과 시민들은 명동성당을 민주항쟁의 거점으로 삼아 농성을 벌였습니다.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명동성당 주변은 늘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짱돌이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직업을 불문하고 이 시대에는 자유의 외침이 강했습니다. 억압받고 구속받는 이때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대응했을 것입니다. 박종철열사의 죽음은 억압이 분노로 바뀌는 작용을 했을 것이며, 민주주의로 가는 디딤돌의 역할이었습니다. 이 성지를 직접 방문함으로써 많은 열사 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가천대학교에는 송광영열사와 천세용 열사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송광영열사는 재학 중 반독재투쟁 등 민주화운동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철학연구회, 경제문제연구회를 창설하여 싸우셨습니다. 그 중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분신하여 운명하셨습니다. 가천대학교 진리관 앞에는 송광영열사의 추모비가 있으며, 모란공원에 안장되셨습니다. 천세용열사는 민족사 연구회 “한얼”에서 활동하셨는데 강경대 학우폭력한 노태우정권타도를 위한 결의대회 도중 분신 후 투신하여 운명하셨습니다. 가천대에는 천세용열사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이천민주공원에 안장되셨습니다. 저희는 분신을 할 정도로 자유를 억압받고 부당한 사회를 외치고 싶었던 열사 분들의 마음을 이번 탐방을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며, 추모비앞에서 열사분들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4.19 기념탑, 김세진 이재호 추모비, 박종철 추모비, 조성만 추모비에 다녀왔습니다.

김세진열사는 서울대 미생물학과에 입학하여 학생회활동을 활발히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전방입소 전면 거부 및 한반도 미제 핵기지화 결사 저지”라고 외치면서 분신을 하여 젊은 나이에 운명하셨습니다. 이재호열사는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을 활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하셨고 젊은 나이에 운명하셨습니다.

당시 한국은 광주민중항쟁의 비극으로 가득 차있어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으며, 반미의식을 일깨우는 시기였습니다. 과연 계속 도움을 받아 미국의 핵기지화가 되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한편 다르게 생각해보면 분단국가가 되었고, 많은 간섭을 받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열사 분들이 계셨기에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박종철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하여 사회사상연구회라는 서클을 통해 학생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지원시위, 노학연대투쟁 등을 벌이면서 구속되었지만 이후에도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87년 1월13일 자정에 치안본부로부터 연행되셨습니다. 그 후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렀으며 젊은 나이에 운명하셨습니다. 박종철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되었으며, 이 땅 민주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묘소는 모란공원에 안치되어있고 부산민주공원에 추모비가 있으며 서울 박종철열사의 기념관이 건립되어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늦은 시간에 방문해 어두워서 추모비에 있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추모비를 보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일차 탐방을 하며 느꼈던건 탐방을 계획하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었고, 많은 분들이 희생되셨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이 않은 민주주의를 남은 탐방을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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