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을 든 시민들
김경민, 이민지, 이지은, 정지수

6월 민주항쟁,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2일차 일정으로 6월 민주항쟁에 대해서 조사해보기로 하였다. 우선 6월 민주항쟁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명동 성당을 먼저 방문한 후, 근처 위치한 향린 교회에 방문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오전 일정을 끝낸 후에는 동성중고, 장면 총리 가옥 역에 내려서 장면 총리 가옥을 간단하게 구경해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근처에서 점심 식사 후 영화 <1987>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6월 민주항쟁의 아픔이 담겨있기도 한 남산 일대를 방문해보기로 하였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일정을 소화하기에 앞서 탐방을 떠나기 전 날, 조사를 위해 TV 프로그램인 <동네의 사생활 : 남산 편>을 시청하였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오전 9시에 숙소에서 나와서 명동 성당으로 출발하였다. 명동 성당에서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결정적 사건 중 하나인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번져갔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또한, 6월 민주항쟁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명동 성당으로 숨어들어온 시위대를 지켜준 일화도 유명하다. 명동 성당은 6월 민주항쟁 뿐만 아니라 광주 민중항쟁을 널리 알린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처럼 명동 성당은 민주항쟁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명동 성당 방문을 통해 명동 성당을 아름다운 명소로만 인식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역사를 함께한 장소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명동성당>


명동 성당

김경민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명동 성당은 종교기관을 뛰어 넘어 많은 시위자들이 집결했던 곳입니다. 탐방 이전에는 그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라 명동 성당 앞마당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미사를 보러 종종 갔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이 마당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모였던 장소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민지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명동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종교 기관이라 하면 이상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공간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명동 성당에서는 여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나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종교 기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지은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명동 성당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는 그 웅장함에 놀랐습니다. 과거부터 서울 중심부를 지키고 있던 명동 성당은 이재명이 친일파 스티븐스를 사살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명동 성당 앞의 넓은 광장에서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정지수

명동 성당은 입구부터 우리나라 대표 성당답게 크고 웅장했습니다. 지금은 민주화 운동의 흔적이 크게 남아있지는 않지만, 조금만 조사해보면 명동 성당이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대표 성당이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명동 성당 근처에 작게 위치한 향린 교회는 명동 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과 함께 6월 민주항쟁의 성지이다. 명동 성당의 감시가 심할 때에도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향린 교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국본’으로 알려진 조직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발기인대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향린 교회는 민중 신학의 상징적인 교회일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한 곳이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향린 교회에 앞에 붙어 있는 여러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플랜카드를 통해 향린 교회가 현재까지도 그 역사를 이어받아 여러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명동 성당 방문 후, 명동 성당과 함께 민주항쟁 운동을 도왔던 향린 교회의 방문을 통해 명동 성당에서 느꼈던 민주화 열기를 더 극대화 할 수 있었다. 또한 향린교회 정면에 크게 붙어있는 6월 민주항쟁 기념비를 통해 향린교회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향린교회> <6월 민주항쟁 기념비>


향린 교회

김경민

웅장한 명동 성당과는 달리 향린 교회는 아주 작은 건물이었습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작고 오래된 건물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6월 민주항쟁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니 한국의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었고, 앞으로 몇십 년 이후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떨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민지

작은 외관과 달리 향린 교회는 6월 민주항쟁의 역사를 품은 곳이었습니다. 성당과 함께 교회까지, 종교의 차이점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해 힘썼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개인의 종교적인 가치나 그 이외의 가치들보다 한 단계 위의 가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지은

향린 교회는 명동 성당과는 달리 작은 예배당만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명동 성당만을 보고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곳이지만, 그 곳에는 6월 민주항쟁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에 모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모색했던 시민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수

명동 성당 근처에 위치한 향린 교회에 방문하니 6월 민주항쟁 기념비가 붙어져있었습니다. 명동 성당과 향린 교회를 다 돌아보고 나니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 학생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인들도 지지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민주화를 위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구에서의 오전 일정을 끝낸 후, 종로구에 위치한 남산 일대로 이동했다. 먼저, 동성중고, 장면 총리 가옥에 내려서 간단하게 장면 총리 가옥을 방문 후 대명거리에 위치한 ‘봉자네 즉석 떡볶이’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봉자네 즉석 떡볶이에서 떡볶이와 버터갈릭감자>

점심식사 후, 택시를 타고 서울특별시청 남산 제1별관에 도착하였다. 당시 제5별관(국)이라고 불린 서울특별시청 남산 제1별관은 남산에서도 심한 고문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이곳으로 끌려간 민주열사들은 짧게는 수십여 일, 길게는 100여 일 넘게 고문을 받고 자백을 강요당하였다. 당시에는 4~5평 넓이의 취조실이 10여 개가 있었고, 밖에서만 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달려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된 상태이다. 현재는 서울특별시청으로 고문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과거에 잘못된 역사의 반성으로 철거를 한 것이겠지만, 아픈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끔찍했던 과거 고문실 방문과 조사를 통해 그 시대 민주 열사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작게나마 공유해보았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중, 길이 84m 정도 되는 소릿길 터널을 지나갔다. 이 터널은 철문소리, 타자기 소리 등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내는 길이라고 한다. 이 터널을 지나서 서울유스호스텔과 근처에 있는 서울종합방재센터에 방문하였다. 

<소릿길 터널>

우선, 서울유스호스텔은 과거 안전기획부의 본관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안전기획부는 군사정권 시절 어두운 국가권력의 상징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1층부터 6층까지 대부분 행정기능을 하는 사무실로 쓰였고, 남산 제1별관 등의 다른 건물에서의 고문에 비하면 약한 편이어서 ‘마사지’로 불렸다고 한다. 현재 서울유스호스텔 건물 앞에는 당시의 상처를 기리기 위한 인권 우체통이 설치되어 있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서울유스호스텔에서 깃발과 함께 인증샷을 찍은 후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종합방재센터에도 방문하였다.

<서울유스호스텔>

당시 중정 지하 벙커라고 불린 서울종합방재센터는 지하 3층까지 이어진 건물이다. 이곳의 본관 건물은 남산 터널과 지하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지하실에서 고문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서울특별시청 남산 제1별관과 함께 고문을 시행했던 서울유스호스텔과 서울종합방재센터의 방문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민주주의에 감사하는 마음과 민주열사를 추모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서울종합방재센터> <중앙정보부 6국터 철문 앞>

다음 일정으로는 현재 철거되어 철문만 남아있는 옛 중앙정보부 6별관 터로 이동하였다. 중앙정보부 6국 터는 주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대학생들이 끌려던 곳이다. 건물의 2~3층에서는 강제적인 조사를 하고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지하 1층에 끌고 가서 고문을 했다. 작년 8월, 서울시가 이 건물을 철거하고 고통의 역사와 희생을 기리는 인권광장과 전시실 ‘기억6’ 조성계획을 세워 2019년 12월 정도에는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그 때 남산 일대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관람하면 좋을 것이다. 비록 이 건물이 철거되기는 하였지만 현재 굳게 닫혀있는 초록색 철문만으로도 당시 민주열사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을지 느낄 수 있었다. 
이후 기억의 터를 지나서 통감관저 터도 발견할 수 있었다. 통감관저 터에 위치한 대지의 눈을 방문하여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또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간단한 묵념을 한 후 중앙정보부 6국 터 위에 있는 ‘세계인권선언문’을 보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과 인권의 존엄성이 무너지던 곳에 새겨 넣은 인권선언문이 아픈 과거를 더욱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50년도 채 되지 않은 이러한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후에 조성될 ‘기억6’을 한 번 더 방문해보기로 결심했다. 

<세계인권선언문> <기억의 터> <대지의 눈>

그 다음 일정으로는 근처에 위치한 문학의 집에 들러 휴식을 취하며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문학의 집은 과거 안전기획부장들의 공관이었다. 현재 문학의 집 담벼락에는 한국문학의 큰 빛이 된 시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누구나 정원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여 문학을 꽃피우려는 문학인들과 일반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문학의 집에서 시를 읽고, 앞에 있는 정원을 둘러보며 그 시대 상황을 생각하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혹시 남산 일대에 방문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문학의 집에서 아름다운 여러 시를 감상하고, 물도 마시며 쉬어가는 쉼터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문학의 집>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옛 중앙정보부 사무동(현 서울소방방재본부)로 갔다. 이곳은 중앙정보부의 수사와 행정기능을 담당하며 사무공간과 함께 유치장으로도 사용된 곳이다. 현재는 서울소방방재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한 주자파출소 터에 방문하였다. 과거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사람의 소재를 확인하거나 면회 또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거치는 곳이었다. 하지만 면회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 방문하는 것 자체로도 과거 자식들이 고문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의 가슴 절절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옛 중앙정보부 사무동> <현 서울소방방재본부>

이후, 2일차 탐방의 마지막 일정으로 경찰청 인권센터에 방문하였다. 여러 민주화 운동 영화의 단골 배경이 되기도 하는 이곳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산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대공분실과 더불어 잔인한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장소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다른 수사기관과 달리 조사실을 지하에 두지 않고 꼭대기 층인 5층에 두었고, 각각의 방에는 책상과 의자, 침대, 욕조, 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각각의 가구는 자해방지를 위해 고정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대표적으로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또한, 최근 화제가 되었던 영화 <1987>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중심으로 하여 촬영되었다. 경찰청 인권센터 내의 박종철 기념관과 고문실은 지금 방문해도 너무 소름끼치고 무서운 곳이었다. 이곳 방문을 통해 박종철 열사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박종철 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방문증이 필수라고 하니 방문하려는 관람객들은 경찰청 인권센터 입구에서 방문증을 작성하면 된다. 분필을 든 시민들 팀은 민주화 관련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공분실 후면 출입구도 방문하였다. 영화 속 6월 민주항쟁의 대표적 장소를 찾아가는 탐방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하는 뜻 깊은 경험이 되었다. 이렇게 2일차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명동 성당, 향린 교회, 남산 일대에 대한 각각의 소감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종철 기념 전시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산 일대

김경민

그저 남산타워가 있는 동네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탐방을 통해 불과 20여년 전 이곳은 너무나도 끔찍한 동네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특히 경찰청인권센터에는 예전의 조사실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데, 많은 민주열사들이 참혹하게 고문을 당했던 당시를 상상해 보니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국가기관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까지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또다시 한번 느꼈고, 그분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민지

서울시청 남산 제1별관에서부터 재난방지센터까지 내려오면서, 많은 역사적 유적지의 터와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를 받고 고문을 당하던 장소가 지금은 유스호스텔, 재난방지센터 등으로 변한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경찰청 인권센터를 방문하여 박종철 열사가 조사를 받은 조사실과 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지은

남산타워가 있는 남산의 일부에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잡혀가 조사를 받고 갖은 고문을 당하던 장소가 모여 있었습니다.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에 보존되어 있던 고문실은 지금 봐도 소름이 끼칠 만큼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당한 박종철 열사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지수

남산 일대에는 민주열사들이 고문을 받은 곳이 모여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폐쇄된 곳도 있었지만, 여전히 고통의 흔적은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았던 곳이 잘 재현되어 있어서 당시 박종철 열사가 느꼈을 두려움과 박종철 열사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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