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민주야 여행가자> -극단 99도

일시 : 8월 13일 ~ 8월 16일

장소 : 서울, 대전, 대구


민주화 운동, 조작간첩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의 연극 <옥인동 부국상사>를 준비하면서 그에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책이나 기사만으로는 마음까지 와 닫지 않았다. 그래서 다함께 관련 현장을 답사하러 가자고 하던 차에 이런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꼭 우리를 위해 준비된 탐방 같았다.


8월 13일 대한주교좌 성당, 이한열 열사 기념관

8월 13일 뜨거운 태양아래 드디어 우리 극단99도는 민주로드 현장 탐방의 스타트를 끊었다.

첫 탐방지인 대한주교좌 성당, 영화나 책을 읽으면서 6월 항쟁에 대한 내용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엄청난 운동의 시작이 시작된 곳이라니 새삼 마음이 설렜다.

겉에서 봤을 때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성당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백발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생각보다 넓은 내부에 끝까지 경건함이 뻗어있었다. 87년 6월 10일 마흔 두 번의 종소리가 울리며 이곳에서 대회참가자들과 신부들이 모여 선언을 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시민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여 그 큰 운동이 시작되었고 지금과 같은 민주화 시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이 연극의 무게도 좀 더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어질 탐방이 더욱 기대가 됐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두 번째 장소는 이한열 열사 기념관이었다. 자주 다니던 신촌에 이토록 가까운 곳이 이런 기념관이 있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이한열 열사가 사망한 그 당시의 6월 항쟁 기사들과 사진, 영상이 전시되어있었고, 그 영상을 보면서 훌쩍이는 단원도 있었고 화가 나서 욕을 하는 단원도 있었다. 2층 전시관에서 실제 이한열 열사가 입었던 당시의 옷과 신발을 보면서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켠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저 어린나이에 무섭지는 않았을까.. 과연 우리라면, 나라면 저 당시에 저렇게 용감하게 나설 수 있었을까.. 영화 <1987>에서 쓰였던 소품과 영상도 전시되어있었는데 기념관을 보고나니 영화를 다시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어졌다. 정점으로 치달았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에 불을 붙이고 스러저간 젊디 젊은 청춘 이한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8월 14일 남산 옛 안기부 터, 옛 남영동 대공분실

우리 연극의 주요 모티브 중 하나가 조작간첩이기에 배경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안기부와 남영동이었다. 실제로 배경이 되는 곳은 옥인동 대공분실이지만 현재는 막혀있어 들어갈 볼 수 없기에 대신 안기부와 남영동 대공분실을 가보기로 했다.

과거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안기부)의 총본산이 바로 남산이었다. 남산에 끌려간다는 건 죽죽거나 간첩으로 낙인 찍힌다는 말로 통용될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현재 남산 옛 안기부 터는 9군데로 나뉘어져 있는데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곳은 없고 대부분이 서울 시청 별관이나 유스호스텔 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재 두 군데는 공사중으로 건물이 아예 흔적조차 남지 않아있었다.) 충무로역에서부터 걸어서 남산을 올라가 좁은 굴 같은 터널을 통과하니 옛 중앙정보부 본관이 나왔는데 정말 이런 곳에 잡혀들어온다면 정말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이 드넓은 남산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걸 보면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중정과 안기부의 세력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되었다. 현재 종합방재센터로 쓰이고 있는 중앙정보부 6별관에는 지하 조사실이었던 큰 철문이 있었는데 찌는 듯한 더위에도 스사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음 곳으로 이동하던 중 옛 통감관저터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기억의 터가 있었다. 마침 우리가 방문했던 날이 ‘위안부 기림의 날’이어서 다같이 모여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진행했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는데 이곳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쓰이고 있지만 내부는 예전 그대로 보존되어있었다. 위층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나선형의 계단과 복도에 줄줄이 이어져 있는 녹색 철문까지... 나선형의 계단은 수감자가 자신이 몇 층에 올라가는지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함이고 복도의 각 방들도 서로 마주 볼 수 없도록 지그재그의 구조로 만들었다고 한다. 5층에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다가 사망했던 수감실이 당시 그대로 꾸며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연극 준비를 하면서 고문실에서의 인간의 야만성과 무사유의 폐해에 대해 공부를 했었는데 실제로 당시에 고문이 자행됐던 고문실에 와있으니 그 두려움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느껴졌다.



8월 15일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사흘째 탐방 장소는 대전이었다. 아침부터 단원들이 모여서 각자 차에 나눠 타고 대전으로 이동했다. 현대의 민주화운동은 항일독립운동, 더욱 거슬러 올라가 구한말의 구국운동과 역사적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근현대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어야 당시의 시대를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으며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연극<옥인동 부국상사>에 무게감을 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 충남도청을 개조해서 만든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을 셋째날의 방문지로 선정한 거였다. 이곳에선 최근 100여 년의 대전의 역사와 발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는데 2층에는 충남도지사실도 그대로 보존되어있어 안내해주시는 봉사자 분 덕분에 상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마침 방문했던 날이 광복절이라 탐방의 의미도 더 새롭게 다가오는 듯했다.



8월 16일 대구 여정남 공원

마지막 날의 탐방지는 대구의 여정남 공원이었다.

대한민국의 독재정권들은 그들의 체재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반공이데올로기를 활용했는데 그래서 정권에 반하는 세력 및 인물들을 간첩으로 조작해 처형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 중심에 ‘인민혁명당 사건’이 있었다. 물론 시기는 다르지만 우리의 연극도 비슷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여정남 공원’의 탐방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고취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또한 특히 보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대구를 방문하는 것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됐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겁니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겁니다.

나는 공무원이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봉사해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권리장전 연극 <옥인동 부국상사>를 준비하면서 『보안사』, 『폭력과 존엄사이』,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등 작품과 관련된 책을 단원들이 모두 함께 읽고 차례로 발제, 토론하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그렇게 이론으로 공부해왔던 것을 실제적으로 느껴본 듯한 4일 간의 탐방이었다. 이번 “민주야 여행가자”를 통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연관되는 장소들도 탐방했으니 이제 이 지식과 느낌을 작품에 녹여내 한국 현대사의 대립과 갈등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만 남았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꽃피우기까지 투쟁하고 희생당한 많은 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앞으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는지 고민하며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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