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청 옥상

[87.12] 구로구청 부정투표 농성 강제해산 - (사이버경찰청 사진인용) 


부정선거 항의 구로구청 점거농성 사건

1987년 12월 16일 13대 대통령 선거 투표 당일 오전 11시 20분경 한 아주머니가 공정선거감시단원에게 부정 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 앞에서 반출되고 있는 사실을 제보하였다. 이에 공감단원들이 현장에 달려가서 조사한 결과, 귤·빵·과자가 실려 있는 트럭의 빵 상자 안에서 봉인이 되어 있지 않은 부정투표함을 발견하였다. 학생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감단(서울시 본부 대표 김희선)은 즉각 구로구 선거관리위원회에 이를 항의하였으나, 개표소로 이송 준비 중이라는 발뺌만 들을 수 있었다. 이에 시민들은 투표함이 빵 상자에 은폐되어 호송될 이유가 없으며, 투표가 끝나기 전에 옮길 수 없게 되어 있다며 이를 부정투표함으로 규정하였다. 분노한 학생과 청년들이 그 투표함을 깔고 앉고, 시민들은 부정선거를 규탄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학생과 시민들이 구로구청 내의 구로구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가 투표 위조 여부를 조사하다가 1시 30분경 3층 선관위 사무실에서 투표함 1개, 붓 뚜껑 60개, 새 인주 70개, 정당대리인 도장, 백지 투표용지 1,560매를 발견하였다. 명백한 부정선거에 분노한 시민과 학생들은 곧바로 농성에 돌입하였다.

그 사이 전경 3,000여 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구청을 포위하여 투표함 탈취를 기도하였다. 그러나 학생들과 시민들은 당국의 정확한 해명이 있을 때까지 부정 투표함을 사수할 것을 결의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정 투표함 소식을 들은 학생·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집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부정 투표함을 끝까지 지킬 것을 결의하고, 부정선거 규탄대회를 진행하였다. 17일 오후 5시 30분경 전날 구로구청 농성에 참가했던 허기수(41)가 구로동 가리봉시장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온몸에 석유를 뿌린 후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8시경에는 6,000여 명으로 항의 군중이 늘어났다. 그러한 가운데 공정선거 감시단은 선거 무효화투쟁위원회로 전환하고, 선거무효화와 독재 타도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18일 자정 무렵 서울시장의 진압 예고 전화가 걸려온 후, 새벽 6시경에 4,000여 명의 백골단이 다연발 최루탄을 난사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구로구청에 난입하였다. 7시경부터는 헬기까지 동원하여 옥상으로 진압 공격을 하였다. 무차별 폭력진압 과정에서 서울대생 양원태는 척추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고,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쫓겨 구청 옥상에서 투신하였다. 그리고 전경에 의해 시민 1명이 창밖으로 던져졌다. 폭력 진압의 결과 17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은 1050명을 연행했고, 105명이 구속되었다. 군부독재의 집권야욕이 드러났던 이 사건은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의 집권 초기부터 암운처럼 따라다녔다.

구로구청 점거농성에 참여했던 이들이 중심이 되어 그 정신을 잇고자 구로구청부정선거항의투쟁동지회가 만들어졌으며 후일 구로항쟁동지회(초대회장 김희선, 부회장 윤두병)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8년 10월 양원태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주요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서중석 저,『한국현대사 60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김기선 외, 『그날 그들은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