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고 이한열 열사 기념비

이한열 열사가 쓰러지고 1년 뒤인 1988년 9월 14일,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뜻있는 이들의 성금을 모아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운다. 위치는 학생회관 남쪽의 작은 동산, 지금은 `한열동산`이라 불리는 곳이다. 추모비에는 "여기 통일 염원 43년 6월 9일 본교 정문에서 민주화를 부르짖다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 님을 추모하고자 비를 세운다"는 취지문과 함께 이한열 열사가 남긴 쓰러지기 직전에 남긴 시가 새겨져 있다.

이한열 열사 옛추모비


이한열 열사가 남긴 쓰러지기 직전에 남긴 시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 
그대 등 뒤에 내려 깔린 
쇠사슬을 
마저 손에 들고 
어딜 가는가
이끌려 먼저 간 
그대 뒤를 따라
사천만 형제가 함께 
가야하는가 
아니다 
억압의 사슬은 두 손으로 뿌리치고 
짐승의 철퇴는 두 발로 차버리자
그대 끌려간 그 자리위에 
민중의 웃음을 드리우자


연세대학교 백주년 동산에 세워진 고 이한열 열사 옛추모비 (연세대 박물관 소장)

추모비의 앞면에는 조각가 김봉조의 `솟구치는 유월` 작품이 조각되어 있다. 이한열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사업회는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87년 발족된 `이한열추모사업회`는 유족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과 뜻있는 이들의 성금을 모아 2005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이한열 기념관`이 세워지고 초·중·고등학생들의 민주화 교육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2008년부터는 `이한열장학회`라는 이름으로 장학 사업을 시작, 현재까지 우리 사회 민주화에 기여한 자의 자녀, 사회적 약자, 깨어있는 시민으로 활동한 자 등 중 대학생을 선정해 26명에게 3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지난 2010년 12월 사단법인으로 출범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5년 6월 4일. 한열 동산에 기념비가 올라가고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이한열 기념비

새로운 이한열 기념비는 충남 보령에서 가져온 육중한 오석을 높이 약 1.4m, 길이 약 4.5m로 다듬어 만든 데다가 세로로 만든 추모비와 다르게 가로로 넓고 길게 뻗어있다.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듯 현대 미술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기념비 앞의 표석에 내장된 전자시계 역시 지금이 2015년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기념비 전면에는 `198769757922`라는 숫자와 의미를 설명한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 연세대 정문 옆 보도블럭 이한열 동판 설치(2016년)

이한열 추모 동판
(연세대학교 정문 왼쪽 기둥에서 약 1.9m 떨어진 네번째 보도블록이 박힌 자리)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 곳, 유월민주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29년 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자리에 추모 동판이 설치됐다. 연세대학교 정문 왼쪽 기둥에서 약 1.9m 떨어진 네번째 보도블록이 박힌 자리다. 동판 설치를 주도한 이한열 기념사업회는 그가 쓰러진 정확한 지점을 찾기 위해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 사진 등을 동원한 고증작업을 벌였다. 마름모 모양의 동판에는 이 열사를 기리는 문구와 이 열사가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하던 당시 친구가 그려준 장미꽃 그림이 함께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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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랑 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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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7
민주랑 친해
민주랑친해1(이한열기념비0704).jpg
201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