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4.18기념비

고려대 4‧18 기념비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번지 고려대학교 본관 앞 중앙광장 우측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이승만 정권 반대 시위 기념



<전면>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
사악과 불의에 항거하여
압제의 사슬을 끊고
분노의 불길을 터뜨린
아! 1960년 4월 18일!
천지를 뒤흔든 정의의 함성을 새겨
그날의 분화구 여기에 돌을 세운다


<후면>

고려대학교 교직원 일동
재단법인 중앙학원
고려대학교 교우회
고려대학교 후원회

민복진 조각
조지훈 명
김충현 서

1961년 4월 18일 세움



※ 4월 18일 고려대생 시위

◦ 학생회 간부들이 학교 안으로 숨어들어 평소 뜻을 같이 한 대의원들에게 낮 12시 50분 점심시간 사이렌을 신호로 학생들을 인촌 동상 앞으로 모이도록 연락
 - 학교 당국은 이를 알아채고 사이렌을 울리지 못하게 했으나, 학생들은 3천 여 명이 집결
◦ 학생들은 신입생 환영회에 사용하려고 준비했던 ‘고대‘라고 글씨가 새겨진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학교 측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언문을 박수로 채택. 5개항의 구호를 낭독
◦ 오후 1시 30분 경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태평로에 있던 국회의사당으로 진출
 - 대광고교 앞과 안암동 로터리 입구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90여 명이 연행됨
◦ 오후 2시 20분 경 학생들은 뿔뿔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집결하여 연좌시위를 벌이며 연행학생 석방과 대통령 또는 내무부 장관의 부정선거 해명을 요구
 - 학생들은 4개 항의 대정부 건의문을 결의
◦  오후 4시경 유진오 총장이 학생 해산을 종요했으나, 학생들은 거부
 - 연행 학생들은 오후 6시 경 전원 석방
 - 이 소식을 듣고 학생들은 유진오 총장과 이철승 의원의 설득을 받아들여 오후 6시 40분 경 자진해서 연좌시위를 해산하고, 경찰 백차와 보도 차량의 선도를 받으며 귀교 
◦ 학생 행렬이 을지로 4가에 이르렀을 때, 경찰 백차는 종로 4가로 방향을 바꿈
 - 오후 7시 20분 경 청계천 4가 천일백화점 앞에 행렬이 이르렀을 때 100여 명의 괴한들이 흉기로 무장한 채 시위대를 급습
 - 학생 수 백 명이 부상을 당하고, 중상자 20여 명은 병원으로 이송
◦ 학교에 도착한 학생들은 유진오 총장의 “학생들의 목적이 하루 이틀에 달성되기는 어렵다. 연행된 학생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아무쪼록 집에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격려와 위로의 말을 듣고 밤 8시 40분 경 해산
◦ 고려대 학생 행렬을 뒤따르던 중고교생 200여 명은 세종로에서 20분간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7시 45분경 강제 해산
 -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을 계속하던 40여 명의 학생들도 8시 10분 경 강제 해산
 (이상 김정남, 2004, 『4․19혁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7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