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방치된 민주화 성지 ‘이한열 동산’




‘6·10 민주항쟁’ 장소… 비석·표지·안내판 없어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정문을 따라 150m가량 올라가자 오른편에 야트막한 동산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이한열 동산’이지만 추모 분위기는 느낄 수 없고, 군데군데 담배 꽁초만 널려 있다. 교내 흡연이 금지돼 있지만 교정이 내려다보여 골초들이 ‘명당’으로 꼽는 동산 한복판에는 이한열(1987년 당시 21세·경영학) 추모비가 쓸쓸히 서 있었다. 대학원생 곽모(29)씨는 “커다란 비석이 이한열 추모비라는 건 학부 졸업 즈음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6·10 민주항쟁’ 25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시민과 대학생들의 기억 속에서 ‘그날’은 모두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당시 한국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했던 민주화운동의 격렬함을 기억할 만한 표지가 서울시내에는 거의 없다. 한때 대학생들은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눈앞의 취업난에 허덕이며 ‘스펙쌓기’에 바빠 과거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졌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7년 6월 넥타이부대와 대학생들은 명동성당, 한국은행 앞 분수대, 서울역광장을 무대로 격렬한 호헌철폐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현재 이한열 추모비와 성공회대성당 안 표지석을 제외하고는 당시 상황을 전해 주는 비석이나 표지, 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다.

박종철(당시 23세·서울대 언어학)씨가 고문받다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뀌었지만 찾는 이들 대부분은 연수 중인 경찰관들이다. 한국은행 분수대 앞의 한 노점상은 “이곳이 민주항쟁의 장소였다는 건 처음 들었다. 살기 바빠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스펙관리에 바쁜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내 일부 대학 캠퍼스에는 6·10항쟁 추모 현수막이 내걸렸지만 학생들은 무관심하기만 하다.

김혜숙(22)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관련 행사가 시험기간과 겹친 데다 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관리에 몰두하다 보니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7년부터 6·10 민주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행사를 갖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신형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실장은 “중·고교에서 역사교육을 소홀히 하는 게 근본 원인”이라며 “서울시의회가 조례를 통해 표지석을 세우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kr[ⓒ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